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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5-08-12] 조회6,186회

애란원 설립자이신 '반애란 선교사' 별세(업데이트)-국민일보 201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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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란원 설립자인 반애란 선교사(Mrs. Eleanor van Lierop)께서 2015년 8월 9일 오전 5시(미국 일리노이주 현지시각)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으므로 알려드립니다.

 반애란선교사는 1943년 반피득선교사와 결혼하시어 1949년 미 장로교 선교부를 통해 신생국가인 우리나라에 부부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피폐한 시기에 남편인 반피득선교사는 교육사업, 반애란선교사는 사회사업에 헌신하시어 빈곤과 고통 속에 미래를 담보할 수 없었던 여성과 청년들의 삶에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반애란선교사는 1960년에 현재 애란원의 위치에 4개의 시설을 설치하여 윤락여성, 미혼모의 상담 및 자립지원에 헌신하시다가 1977년 귀국하셨습니다. 그후 애란원은 1983년  현재의 한국장로교복지재단으로 귀속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혼모자복지사업을 통해 반애란선교사께서 이루신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따라 일생을 어려운 자를 위해 살다 가신 반애란선교사님을 기리며 이제 하나님의 곁에서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반애란 선교사님의 따님(Marti (van Lierop) Valasek)의 부고 메일

  My Mother passed away today at 5:00 AM, August 9.  We are having a funeral wake for her on Tuesday, August 11 at Gibbons Funeral Home in Elmhurst, IL.  Then on Saturday, September 5, we will have her Memorial Service at Bridgeway Senior Village. 

Sincerely,

Marti (van Lierop) Valasek

* 장례식 영상
https://youtu.be/p8Z9_yJ_m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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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 반애란여사가 애란원에 보낸 편지 >

나는 반애란(Eleanor Creswell Van Lierop)입니다.

1949년, 선교사이며 연세대학교 교수이던 남편, 반피득(Peter Van Lierop)
목사를 따라 한국에 왔습니다. 나는 미국 미시간의 한 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20년… 어린아이였던 나는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어느 도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어떤 집에서 소녀들이 나쁜 남자들에게 감금과 폭행을
당하면서도 힘이 없어 도망가지도 못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왜 엄마가 가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어요?”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받은 첫 번째 도전이었는지 모릅니다.
 
한국전쟁 당시, 많은 UN군이 한국에 머물던 그때 나는 시골에 사는
많은 어린 소녀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여
성 매매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남의 집 가정부로 던져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밤중에 제자 중 한 학생이 임신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도움을
청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의 불우한 여성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군부대 교회서 시무하시던 목사님이 “군부대 주변을
서성이는 매춘부들에게 우리가 무언가 해주는 게 어떨까요? 하는 제안을
하시면서 행동해야 하는 사명감이 구체화되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러한 도전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우선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이 머물 곳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곳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말도 안되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한국의 여러 기관이나 사회적 상황은 이 일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나의 안타까움은 나를 더욱 구체적으로 행동하게
했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절박한 만큼 부딪히는 저항도 컸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은 그 힘을 잃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일이 신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노력을 축복할 것이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재정적으로도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의지였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단지 계시로만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이 될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실제가 되어 주셨습니다.
 
나는 그저 열심히 기도하며 편지를 쓸 뿐 이었습니다.

한국 기독교 세계 봉사회에서 주신 천 달러가 열 대 여섯 명의 소녀들이 살
첫 번째 집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은혜의 집(House of Grace), 희망의 집(House of Hope)’이 탄생했습니다.

소녀들이 찾기 시작했습니다. 임신 중인 소녀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소녀들이 마음 편하게 아이를 낳고, 양육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를 느꼈습니다.
 
이들이 양재나 미용을 배워 자립할 수 있는 ‘기쁨의 집(House of Joy)이
세워졌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자선 예산을 통해 미혼모들의 운동, 응급 처지, 분만 등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집(House of Faith)’이 세워짐으로 상담, 성경 공부, 요리,
공부, 옷 만들기, 꽃꽂이 등 바깥 세상에 대처할 준비가 구체화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일하심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그에 맞는 손길을 준비
하시며, 도움이 필요한 많은 여성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따뜻한 보금
자리가 되어 주심으로 당신의 계획을 구체화시키셨습니다.
 
어느 겨울 바람이 불고 몹시 추운 날이었습니다.
마당에 나와있던 나는 약하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부른 배를 옷으로 감싼 채 서있는 어린 소녀였습니다.
소녀를 안으로 들였습니다.
 
얼마 후 소녀는 출산을 했고, 아기를 입양을 보냈습니다.
그 소녀의 고통의 시간들을 지켜 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보호하려 했고,
보호해왔던 여성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아기를 떠나 보내야만 하는 엄마의 슬픔과 상실의 고통은 엄청난 것
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또 다른 도전을 주셨습니다. 미혼모를 돕는일…
 
그러나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습니다. 잠시 귀국하여 사회사업학을
공부한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애란원을 미혼모시설로 전환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쁨의 집’이 탄생한 겁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의 전부는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많은 수호 천사들을 일으키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나와 나의 협력자들은 기도자일뿐이며,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동역자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애란원이 가능했습니다.
 
애란원의 역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여정이자 한결 같은 기도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사하는, 인간을 화합하게 하는 능력에 대한
사람들의 강한 확신입니다.
 
나 Eleanor Creswell Van Lierop… 반애란을 일으키셔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여정을 목격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나는 은퇴해서 고향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애란이라는 힘없는 여인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미혼모 사역이라는 구체적 목적을 한국에 뿌리내리게
하시는 확장을 이루셨습니다.

"애란원이 시작되고 프로그램이 발전되면서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회상하는 지금, 우리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난 것을 목격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삶이 무의미하다고 믿었던 많은 소녀들이 희망, 기쁨, 믿음을 가지게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준비해 주신 충만한 삶으로 인도된 점은 가장 큰 기적입니다."       
 
“이 일은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국민일보

[단독] 한국 최초의 미혼모시설 '애란원' 설립자 반애란 선교사 노환 별세

2015-08-14 

한국 최초의 미혼모자 생활시설인 ‘애란원'(서울 서대문구 연대동문길 소재)을 설립해 미혼모 복지에 반평생을 바친 벽안의 선교사 반애란(미국명 엘리노어 반리롭) 여사가 지난 9일 오전 5시(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장례식은 11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서부 교외 엘머스트 기본스퍼너럴 홈에서 치러졌다. 

 고 반 여사는 미국 북장로교 파송선교사인 남편 반피득(미국명 피터 반리롭) 목사와 함께 1949년 한국에 들어왔다. 안동 경안학원 설립자인 반 목사는 연세대 신학대학 설립 및 학장을 역임했다. 2012년 별세했다.

 경북 안동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반 여사는 60년 윤락여성, 미혼모, 가출청소녀를 돕는 시설인 ‘은혜원’(애란원의 전신)을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에 설립해 수많은 미혼여성과 자녀를 위해 헌신하다 77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8년간 더 선교사로 일하다 은퇴, 일리노이의 요양원에서 지내왔다. 반 여사는 83년 애란원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에 기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반 여사 부부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

애란원에 따르면 반 여사는 생전에 “모든 것은 사랑입니다. 사람은 모든 허물을 덮어 주지요. 우리가 서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애란원을 통해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국인은 너무나 순수했습니다. 대접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아마도 그 같은 대접 정신을 가진 민족은 드물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그립습니다”라면서 착하고 순수했던 한국인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생전에 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애란원에는 현재 미혼모와 아기 등 4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입소와 퇴소를 반복하지만 미혼모가 자립할 때까지 보살피고 관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렇게 지원하는 미혼모가 연 500∼600명에 이른다.

강영실 애란원장은 “애란원은 미혼모자복지사업을 통해 반 여사가 뿌리내린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며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따라 일생을 어려운 자를 위해 살다 가신 반애란 선교사를 기리며 이제 하나님 곁에서 평안하시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모예배는 다음달 5일(현지시간) 반 선교사 부부의 기념관인 브리지웨이 시니어 빌리지에서 열리며 애란원에서도 추모예배와 행사를 열 예정이다(02-393-4720·aeranwon.org).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KJH님의 댓글

KJH 작성일

기독공보(신동하 기자) 8월 17일자


'애란원' 설립자 반애란 선교사 9일 별세


▲ 반애란 선교사.

미혼모자생활시설인 '애란원'을 설립한 반애란(Eleanor van Lierop) 선교사가 8월 9일 오전 5시 미국 시카고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장례예식은 11일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치러졌으며, 9월 5일 Bridgeway Senior Village에서 별도의 추모예배가 열린다.

반애란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남편인 故 반피득(Peter Van Lierop, 안동 경안학원과 연세대학교 신학대학 설립) 목사와 함께 1949년 한국에 들어와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했다.

1960년에는 윤락여성, 미혼모, 가출 청소녀를 돕는 시설인 은혜원(애란원의 전신)을 서울시 서대문구 대신동에 설립하여 수많은 미혼여성들을 돕다 1977년 본국으로 귀국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반애란 선교사는 최근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 준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때 기적이 일어난다"며 "애란원을 통해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기적을 체험했다"면서, 한국에서의 생활과 애란원에 대한 애정을 밝힌 바 있다.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